뮤직비디오 촬영장 스케치

오전 10시에 도착한 뮤직비디오 촬영장은 생각보다는 한산했고, 그러면서도 생각했던 것보다 분주하게 돌아갔다. 넓고 거대하지만 어두운 공간 안에 빈틈없이 꾸며진 세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이상야릇한 장치들과 케이블이 잔뜩 달린 커다란 카메라가 전동달리 위에 얹혀서 원형으로 깔린 레일 위를 조용히 돌아갔다. 그리고 그 레일속 메이크업 룸 세트의 중심에 하이니가 앉아 있었다. 차가우면서도 매혹적인 눈빛, 음악에 맞춰 나지막하게 가사를 읊조리는 입술, 순간적으로 현실감을 잃었다. 그럴 리가 없을 터인데도, 하이니가 앉아 있는 의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감독님의 ‘컷’ 사인이 나자마자 하이니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눈에 힘을 풀고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힘들어~’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옷매무새와 머리 모양을 가다듬기 위해 그녀 주위로 스타일리스트들이 몰려들었다.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느 누구라도, 한 사람이 그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걸 목격한다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으리라. 처음 접한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그러한 ‘갭’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갭’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보단, 색다른 매력이 느껴진다는 점이 재밌었다.

2012년의 두 싱글 <보고싶은데>, <전설같은 이야기>,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2013년의 히트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OST <가질 수 없는 너>라는 세 곡으로 하이니라는 아티스트를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서, 10월 발매 예정인 첫 앨범의 타이틀곡 <클러치 백>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클러치 백>은 지금까지 하이니가 불러 왔던 발라드가 아닌,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인 일렉트로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음악적 변화에 맞춰 뮤직비디오 속의 하이니도 지금까지의 ‘발라드 여신’스러운 모습과는 다른, 도도하면서도 트렌디한 특성이 강조된 모습이었다. 발라드 아티스트로 하이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앨범이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빠질 좋은 기회가 되지않을까.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 힘들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왔지만, 실제로 접해 보니 역시 전해듣는 것과 직접 지켜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진행된 촬영은 숨돌릴 틈도 없다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걸린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1분 1초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촬영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더욱 빡빡하게 느껴졌다. 한 씬 한 씬이 끝날 때마다 카메라 렌즈를 갈아끼우고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촬영팀, 조명을 재배치하고 반사판을 이리저리 옮기는 조명팀, 거대한 세트를 옮기고 그린스크린을 펼치는 세트팀, 메이크업을 고치고 의상을 준비하는 스타일리스트 팀까지. 촬영, 조명, 세트, 스타일리스트 팀 모두가 스케줄에 맞춰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물론 가장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인 하이니. 10개가 넘는 의상을 입어 가며 더운 조명 아래에서(그렇다, 조명은 정말 뜨겁다) 노래하고, 연기하고, 안무까지 소화하는 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촬영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그녀는 지친 기색은 보일지언정 의욕없는 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밝고 의욕 넘치는 기세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뮤직비디오 하나를 만드는 데 참여하지만, 결국 그들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티스트 본인의 역할이니까.

촬영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하이니의 첫 립싱크 씬이었다. 스피커에서 레코딩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에 맞춰서 현장의 하이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순간, 굉장히 신기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레코딩된 트랙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라이브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인데, 그 두 경험이 겹쳐지는 순간은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만의 겸험이었다. 물론 하이니의 허스키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던 것도 내가 느꼈던 짜릿함에 큰 역할을 했다. 원체 라이브로 유명한 그녀지만, 이번 곡의 라이브는 특별히 더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

새벽이 다 되서야 시작된 군무 촬영. 앳된 얼굴의 백업댄서들과 함께 열심히 춤을 추는 하이니. 아티스트를 화면 속에서 만나는 것과 실제로 지켜보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이 있다지만, 그 차이가 극대화되는 부분이 군무 파트가 아닌가 싶다. 발구름에서 느껴지는 진동, 흩날리는 땀방울, 반짝거리는 진지한 눈빛. 화면 속에서 이러한 생생함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역시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절도있고 깔끔한, 노래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안무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건 만족스럽다.

늦은 시간에 시작된 군무 촬영이지만 카메라 앵글을 달리하면서, 미흡한 동작을 수정해 가면서 몇 번이고 똑같은 춤을 계속해서 반복해 가며 촬영한다. 현장에 오기 전까지는 “완벽한 씬이 나올 때까지 반복 촬영”이라는 게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장에 직접와 보니 그것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완벽한 장면은 결코 한 컷만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똑같은 씬을 수없이 찍고, 또 찍음으로써 완벽한 씬을 얻어내는 것이다. 겨우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씬을 말이다. 그것을 하이니도, 댄서 팀도, 스탭들도 모두 알고있기에, 힘든 내색 없이 다시촬영에 임한다.

새벽 5시. 드디어 커다란 액자앞에서의 마지막 군무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정말, “수고했다”는 말로밖에는 마무리할 수가 없는 긴 시간이었다. 고생스러운 촬영 현장이었지만, 그만큼 하이니의 새로운 매력을 한껏 담아낼 수 있었기에,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에게 뿌듯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2014년 가을, 다른 누구보다 주목해야 할 이름임에 틀림없다.

글/정구원(웹진[weiv] 에디터)
Making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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